제주와 군

여자해병대 의용군

똥맹돌이 2014. 11. 12. 10:52

여자해병대 의용군

 

 

북한군이 파도처럼 밀려내려와 전 국토를 유린하고 있던 때 제주도에서 해군 여자 의용군이 처음으로 탄생하였다. 미혼의 여학생과 여교사들도 조국수호라는 대의(大義) 앞에 남녀 구별이 있을 수 없다는 비장한 결의와 각오로 1950년 8월 해병대에 자진해서 입대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해군에 여자군인 제도는 없었기 때문에 이들이 왜 해군훈련신병소에 입소시켜 훈련을 받게 한 다음 해병대 군번을 부여한 후 해군으로 근무했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다만 위급한 난국을 해결하기 위해 여군이 후방에서 지원업무를 담당하는 것이 효율적이라 판단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이렇게 자진 입대한 여자의용군 126명은 해병대에 지원하자마자 제주 동초등학교에 집결하였다. 1950년 8월 27일부터 28일까지 양일간에 걸쳐 집결한 이들 여자의용군은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후 머리가 긴 여자는 단발머리형으로 자르고 손톱, 발톱, 머리카락을 잘라서 보관하는 등 입대식 준비를 위한 절차를 마쳤다. 그리고 8월 29일부터 30일까지 제식훈련을 받은 후 8월 31일 태극기를 가슴에 두르고 제주 북초등학교에서 역사적인 입대식을 가졌다. 해군역사상 최초의 여자 의용군이 탄생한 것이다. 이는 1950년 9월 5일 창설한 육군여군보다 6일 앞서 이루어졌다.

 

 

 

 

입대식을 마치고 돌아온 126명의 여자 의용군은  9월 1일 아침, 전송하러 나온 사람들이 흔드는 태극기 물결을 헤치며 제주항 산지부두에서 해병3.4기와 해군수송선 LST를 타고 출항하였다. 9월 2일 저녁 진해에 무사히 입항한 후 경화초등학교에서 신병 기초훈련을 받았다. 10월 10일에 40여 일간의 교육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수료한 이들은 소위 4명, 병조장(상사) 2명, 1등병조(중사) 7명, 2등병조(하사) 9명, 3등병조(하사) 15명, 1등수병(상병) 89명의 계급을 부여받았다. 이중 51명은 수료 후 귀가했고 나머지 75명은 해군 위생병원에 대기하다가 해군통제부로 이동해 각자의 경력, 특기, 나이 그리고 개인희망 등을 고려해서 해군통제부 각 참모부 및 직할부대와 진해해군병원에 배치되었다. 국군과 UN군이 한만 국경선인 압록강에 도달할 무렵인 1950년 11월 23일 학업을 희망한 사람과 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겠다고 의사를 밝힌 여자해병 42명이 전역했다. 같은 날 해군본부는 해군통제부, 해군진해병원 그리고 해군통제부 정훈실에서 근무하던 24명을 해군본부로 전속하였고, 해군본부로 전속된 여자해병들은 각 참모부서 및 직할부대 행정병, 정훈병, 유선/교환병으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1951년 3월 5일에 1명이 전역했다. 5월 10일에는 20명, 5월 29일에는 1명이 차례대로 전역했고 6월에는 11명만이 남았다. 대부분 여자해병들이 전역하자 11명 전원을 해군통제부로 다시 전속시켜 원래 보직으로 재배치했다. 휴전 회담이 개시되어 전선이 교착상태에 있을 때인 1951년 7월이 되자 8명이 추가로 전역했다. 이어 장교 2명은 각각 8월과 12월에 순차적으로 전역하자 이순덕 중위 1명만이 유일한 여자해병이었다. 한편 이순덕 중위는 휴전협정 이후 약 1년 6개월 뒤인 1955년 1월 17일에 전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