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와 군

6.25그날 (1)

똥맹돌이 2014. 12. 29. 19:14

1. 6.25 그날

븍한공산군의 불법남침으로 국토가 피로 물들던 저 악몽의 일요일 그날, 1950년 6월 25일 김충희지사는 목포에 있는 친척집 안에서 한뭉치의 서류를 뒤적이고 있었다.

피해복구 사업을 더욱 구체화하기 위해 정부에 제출할 통계자료들이었다.

6월 27일 중앙청에서 열리기로 되어 있는 지방장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좌문규 비서를 대동하고 김지사가 제주를 떠난 것은 하루 전인 24일 오후였다.

새벽에 목포에 닿은 그들은 얼마 남지 않은 열차시간을 여관에서 보내기도 겸연쩍어 김지사의 권고에 따라 목포역에서 가까운 친척집에 들른 것이었다.

서울행 급행열차의 발차시간은 상오 9시 30분-.

이때 기차표를 사러 나갔던 좌문규가 황급히 들어오며 심상찮은 보고를 하는 것이었다. 그날 아침의 일이다.

『지사님 아무래도 큰일이 터진 것 같습니다. 아까 방송에 38선 일대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뉴스를 듣고 바깥 공기를 알아봤습니다만 시민들이 웅성거리는 것이 아무래도 예사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 그놈들이 또 장난을 치는거겠지. 국지적인 충돌은 지금까지 수없이 보아왔지 않아. 어서 아침밥이나 먹고 올라갈 준비나 해. 회의가 있기 전에 관계부처에 이 서류를 내어 사전교섭을 해야 하니까.』

김지사는 이번 열리는 지방장관회의에서 제주도실정을 속속들이 알려 정부의 집중적인 지원을 가속화시켜야 하겠다고 벼르던 참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감에 따라 라디오 뉴스는 의정부, 동두천, 고랑포, 개성, 옹진, 춘천, 강릉방면에서 공산군이 전면남침하여 피아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고 전하고 그러나 충용무쌍한 우리 국군이 반격전을 벌여 침략군을 격퇴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김지사는 개운찮은 예감이 없지는 않았으나 곧 격퇴시키려니 하는 마음으로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송정리에 열차가 닿자 사태는 의외로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었다.

트럭에 분승한 무장군인들이 긴장된 모습으로 꼬리를 이어 북상하는가 하면 열차는 급행, 완행할 것 없이 군수물자를 실어 나르기에 바쁘다.

역 구내는 어느새 이러한 북새통에서 일대 혼잡을 이루고 있었다.

중대한 비상사태에 들어 있음을 직감케 한다.

저놈들이 전면남침을 자행했단 말인가. 그러나 서울 가는 길을 포기하여 돌아갈 수는 없다.

지사에게 주어진 최대의 과제인 재해복구를 추진하기 위해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군인과 군수물자 수송 때문에 뒤로 미뤄져 연발되던 열차가 떠난 것은 송정리역에 들어선 지 세 시간 후였다.

전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한 판단이 어려운 가운데 열차가 서울에 닿은 것은 다음날 아침 7시경이었다.

물자수송으로 열차타이어가 여러번 바뀌어 10시간 이상을 연착했던 것이다.

서울역에 내리니 사태가 더욱 긴박함을 실감케 한다.

거리는 일선으로 향하는 무장군인들의 행렬로 가득하고 이미 계엄령이 내려진 가운데 시민의 표정은 어둡고 착잡하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택시를 잡으려고 아무리 사방을 둘러보아도 민간차량은 찾아보기 어렵다.

버스도 없는 거리는 긴장과 초조감이 역연하다.

서울역 출구에서 헌병의 일검을 받은 후 손바닥에 검인을 받아 거리에 나온 두 사람은 뚜벅뚜벅 중앙청 쪽으로 발길을 옮기는 수밖에 없었다.

그 판국에 시장기는 다 뭐고 지사의 체면 같은 것을 생각할 겨를이 있겠는가.

단골로 들고 있던 적선동 화신여관까지 두 시간에 걸친 도보 끝에 도착한 것이 9시경이었다.

겹치는 피로를 풀기 위해 잠시 잠을 붙였던 좌문규는 외부동향을 살필 겸 마침 문교관계 보고사항을 전달하기 위해 중앙청으로 갔으나 몇 사람의 하급직원이 서성거릴 뿐 책임자 하나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일이 크게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곧바로 효자동 전차종점에 있는 제주도 경찰국장 이성수의 집을 찾았다.

이국장은 단신으로 부임했다가 업무보고를 겸하여 상경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국장은 이 상황하에서 지방장관 회의는 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고 정부도 곧 수원으로 옮길 것 같으니 이에 대처해야 하지 않느냐고 제의했다.

멀리서 총성이 들리는 듯한 어수선하고 긴장된 26일의 태양이 아스팔트 바닥에 내리쬐여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계속)

(출처 : 도제50년 제주실록. 1997. 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