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내 충혼(기념)탑

해병혼탑

똥맹돌이 2019. 9. 19. 15:06

해병혼 탑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동문로 15

 

 

 

 

 

 

 

 

 

 

 

 

 

제주 제주시 일도1동 1146번지. 동문로터리 중심부. 하늘을 찌를 듯이 하얀 색으로 서있는 탑이 있다. 이름하여 ‘해병혼탑’. 6.25에 참전했다가 산화한 해병대 영혼들을 추모하고자 세운 탑이다. 횡단보도가 없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것이 아쉬운 대목이다.

과거 제주도 청년들은 군대에 입대하게 되면 당연히 해병대로 편입되었다.

오늘의 해병은 제주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정도다. 그래서 제주도는 해병대의 고향이다. 해병대는 1949년 초에 진주의 허름한 비행기 격납고에서 380여 명으로 창설됐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해병대의 전통은 탄생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그러나 해병대를 키운 것은 제주도였다. 1949년 12월 해병대 주둔지가 제주도로 바뀌었다. 해병의 임무는 잔여공비의 소탕이었지만 첫 번째 주임무는 해병대 정신을 고양하는 훈련이었다. 바로 해병대의 불굴의 정신은 한라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난 것이었다. 해병대는 6.25당시에 제주도에서 갈고 닦은 그 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것이다.

6.25에 자원 참전했던 해병대 3,4기는 앳된 중.고등학생들이 많았고, 이들 중에는 형제들도 있었고 스승과 제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10여년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 ‘돌아오지 않는 용사’들을 위해 1960년 4월 지금의 자리에 ‘해병혼 탑’(경연면적 393㎡, 기단높이 1.83m, 탑높이 8.17m)이 세워졌다. 그 자리는 그때 그 뜨거운 피를 가졌던 청춘들이 출병식을 가졌던 자리이고, 해병혼탑은 그 젊은이들이 떠나가던 북쪽의 항구를 바라보고 있다. 그들이 떠나던 날이 9월 1일이고 그날은 ‘제주도 해병의 날’로 지정된 날이다. 그 날이 되면 거리에는 장갑차와 상륙정이 등장하는 시가행진이 벌어지는 것이다.

(비문)

여기

耽羅의 푸른 넋의 엉겨

塔이 되다

갈리운 땅덩이 위에

統一의 횃불을 높이든

海兵魂은 솟았나니

平和를 念願하는

像 앞에

겨레여

옷깃을 여미이시라

(탑의 전면)

글 : 張宰城 글씨(海兵魂) : 金光秋

 

 

취지(趣旨) -탑의 우측면-

檀君의 歷代를 두고 類例없는 白衣民族의 受難 6·25動亂을 想起한다. 國運明滅의 岐路에 선 民族의 殺傷은 錦繡江山을 血淚로 물드렸고 肉骨은 山野에 허덕일때 坐視보다 죽음으로 救國의 大道를 指向하여 民族의 指針이 되겠다고 十代의 젊은 이 고장 學徒들이 바로 忠武公의 넋을 이은 大韓海兵이었다.

世紀의 戰史에 燦爛한 仁川上陸作戰은 世人共知의 事實이며 大韓民國의 運命을 盤石위에 安置케 하였다. 生存한 우리 海兵除隊將兵은 이 고장 健兒 앞에 護國精神의 繼承의 表式을 啓示하는 뜻과 大韓의 永久한 繁榮을 期하는 鵬志에서 여기에 지난날의 前歷을 더듬으며 그 歷歷한 戰功을 追念하고 永久不滅의 象徵의 탑을 이 고장 漢拏麓에 세우노라.

탑 建立에 提하여 海兵大領 李西根, 豫備役 高喆洙, 文相律, 金炯根 同志들의 犧牲的 勞苦에 感謝를 表하면서

檀紀 4293年 4月 日(서기 1960. 4)

建立代表 張時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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