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소재)
1. 건립취지 및 유래
- 프랑스는 6.25가 발발하자 1950년 11월29일 1개 대대규모를 파견하였음
- 이들은 쌍터널 부근 전투, 지평리 전투, 화살머리고지 전투, 단장의 능선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워 많
은 전과를 거두었음.
- 이 공로를 기리고 산화한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고자 기념비를 건립하였음.
2. 전황
- 프랑스 대대의 1중대는 주로 해병대 출신이고, 2중대는 수도방위 보병부대 출신이었으며, 제3중대는
낙사산병과 외인부대 출신으로 구성되어 각각 특징을 갖고 있었음.
- 이들은 약 2주간의 현지 적응훈련을 마친 후 전선에 투입되어 전투를 치렀음.
- 쌍터널 부근 전투(원주 서북방 25km)는 1951년 1월31일~2월2일까지 원주-양평에 이르는 중앙선 종
로상의 쌍터널 부근에서 중공군 제125사단과 치른 전투로써 미 23연대 1,2대대의 정찰대가 정찰도중
쌍터널에서 도착단계에 접어들자 이를 지원하기 위하여 미 23연대 3대대와 같이 교전지점에 도착하
였을 때 적은 보잊 않아 정찰대를 구출하여 야간 공격에 대비한 사주방어에 들어갔음. 다음날 중공군
125사단 예하 2개 연대가 여명을 기하여 공격하였으나 프랑스 대대는 중공군을 격퇴하였음.
- 지평리 전투는 1951년 2월13일~15일까지 실시한 전투로써 쌍터널전투를 마치고 2월3일 지평리로 이
동후 지평리를 중심으로 편성된 전면방어진지의 서측방을 방어하였음.
- 2월11일 중공군의 2월 공세에 밀려 연대 좌우측 연대들이 철수하게 되자 지평리는 완전 고립되어 범
위를 당하게 되었음.
- 그러나 3일간 걸친 적의 파상공격을 물리치고 진지를 고수하였으며 2월15일 후방으로부터 증원부대
가 도착하자 범위망을 풀고 후퇴하였음. 이 전투결과로 지평리 여주방향으로 진출하여 유엔군 전선을
양분하려던 중공군의 기도를 좌절시켰음.
- 또한 양구북방 22km지점인 단장의 능선 전투와 철원 북방 15km지점인 281고지(화살머리)전투 등에
서 많은 공적을 세우고 1953년 10월23일 소규모 잔류부대를 남긴 채 본국으로 철수한 뒤 1956년 6월
에 완전 철수하였음.
3. 비문내용
- 불가능이 없다는 신념을 가진 나폴레옹의 후예들! 세계의 평화와 한국의 자유를 위해 몸바친 262명의
고귀한 이름 위에 영세 무궁토록 영광 있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