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태동기와 6.25이후
1. 역사적 상황
1945년 8월15일 정오에 일본 천황의 항복방송에 의하여 우리나라는 일제의 쇠사슬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조국 광복이 자력에 의해서가 아닌 타력에 의하여 이루어졌으므로 광복 후의 사태를 수습할 만한 대치(代置)세력이 없었다.
9월9일 하지중장이 이끄는 미군이 서울에 진주하여 조선총독 아부신행으로부터 항복문서를 받고 일본의 한국지배 종식을 정식 선언하였다. 제주도에는 9월28일 라우엘 대령이 인솔하는 1개 연대가 상륙하여 관덕정 광장에서 도민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면서 제주에 주둔하였던 일본군 58군단장 원산등 중장으로부터 항복문서를 받고 무장해제에 착수하였다. 또 일본인 도사 천전전평으로부터 행정권을 접수하여 9월29일부터 미군정이 개시되었다.
미군정청은 치안유지를 위하여 10월8일 국립경찰을 창설하고 제주경찰서는 제8관구 경찰청 제22경찰서로 개편하여 치안유지에 힘쓰도록 하였다. 10월11일에는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청을 제주지방법원으로 승격시켰다. 이는 미군정청이 제주도의 특수사정을 감안하여 종전에 전라남도에 예속되었던 것을 분리시켜 승격시킨 것이다.
이에 행정면에서도 전라남도에서 분리하여 도제를 실시하여 줄 것을 진정하기 위하여 김홍석 등이 도승격추진 위원회를 구성했고, 이를 미군정청에 요청하니 군정청에서 조사단을 파견하여 1946년 8월1일 도로 승격되었고 초대지사로는 박경훈이 임명되었다.
한편 국방경비대가 창설되어 1947년 모슬포에 육군 제9연대가 주둔하였고 1948년 2연대도 주둔하였다.
1948년 4월3일 4.3사건이 일어나 제주도 유사이래 없었던 엄청난 참사가 전개되었다. 수만명이 사망하고 중산간 마을이 모두 초토화되었으며 3년 후에야 군경토벌대에 의해 진압되었다.
1950년 6월25일 6.25가 발발하자 제주도는 지리적 여건등으로 곳곳에 훈련소가 설치되었고 많은 도민들이 조국을 수호하기 위하여 전선으로 나갔다.
육군 제5훈련소 휘하 제3교육대가 모슬포에 주둔하였고 대구의 제25교육연대가 1951년 1월 모슬포로 이동하여 왔다. 그리고 1951년 3월21일에는 육군제1훈련소가 정식 출범하여 1956년 1월까지 주둔하였다.
1955년 9월1일 제주읍이 시로 승격되어 40개동으로 편성되었다.
제3공화국의 출범 이후 위정자들은 제주도의 진가를 인정하여 대대적인 개발계획을 추진하였다. 도로개발, 용수개발, 전화사업, 본토와의 교통망 확충 등을 추진하여 1970년대부터 비약적인 발전을 도모하였고 관광지로서 크게 각광을 받기 시작하였다.
1081년 7월1일 서귀읍과 중문면이 통합하여 서귀포시로 승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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