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호국영웅 한규택 상병
한규택 상병은 1930년 4월16일 북제주군 애월읍 상귀리에서 한자순씨의 2남으로 태어나서 1945년 3월25일 사립하귀소학교(현재 하귀초등학교)를 3회로 졸업하였다.
한규택 용사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8월5일 해병대3기로 지원 입대하여 제주도의 모슬포 병영에서 혹독한 신병훈련을 받은 후 경인작전에 앞장섰다. 북진작전에 참전하여 원산에 상륙한 후 강원도 통천, 고성, 함경남도 문천을 거쳐 평원국도를 따라서 11월15일 평안남도 양덕군 동양면 상석리까지 진격하였다. 그러나 이 곳은 험산준령으로 이루어진 고산지역이고 더구나 삭풍과 눈보라속에 인민군에게 겹겹이 포위를 당하였다.
이때 한규택 일병은 해병 제3대대(대대장 소령 김윤근)제11중대(중대장 중위 박동렬)화기소대 소속 기관총 사수였다. 이때 인민군 1,000여명이 마전리-동양간의 보급로를 차단하려고 평남 양덕군의 구룡리, 자개동, 토기리 일대에 침입하여 약탈을 자행하였다. 이를 토벌하기 위하여 한규택 일병이 속한 제11중대가 11월20일 용약 자개동으로 출동하였다.
그러나 자개동에 이르자 중화기로 무장을 한 우세한 적군이 유리한 지형을 이용하여 공격을 해오자 아군은 전사자가 속출하는 등 위태로움에 직면하였다. 이에 이르자 박동렬 중대장은 기관총 사수인 한규택, 부사수인 홍순조, 탄약수인 박영으로 하여금 지원사격을 하도록 하고, 제3소대장(소위 이재원)에게 엄호 임무를 부여하고 중대는 철수를 개시했다.
그러나 소나기 처럼 퍼붓는 적의 기관총 사격으로 인해 아군의 철수가 어려움을 알게 된 기관총 사수는 이미 적탄에 찰과상을 입어 유혈이 낭자한 상태에서도 적의 기관총 3정을 공격목표로 정하였다. 그래서 적의 기관총 한정을 격파하고 나니 왼쪽 어깨에 관통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러나 한 일병은 "아직 나에게는 오른팔이 있다."하며 함성을 지르며 적의 두 번째 기관총마저 격파하였다. 그는 계속하여 세 번째 기관총을 격파하려는 순간 아깝게도 적이 쏜 탄환이 한 일병의 가슴을 관통하였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임무를 부사수에게 인계학 말없이 눈을 감았다. 이 찰나의 틈을 타서 제11중대는 위기에서 탈출할 수가 있었다. 참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는 목숨을 내놓으면서도 끝내 완수하려는 한일병의 정신은 지금도 전군의 귀감이 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이 갸륵한 한규택 일병의 전공을 기려 상병으로 추서하였다. 전쟁사업기념사업회에서는 한규택 상병의 공훈을 기려 1995년 4월에 100인의 호국인물중에 한분으로 한규택 상병을 선정하였다.
한규택 상병의 묘는 현재 애월읍 수산봉에 위치한 애월읍 충혼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그 후 2001년 6월 제주시 애월읍 상귀리에서는 하귀2리 1908번지 하귀초등학교 교정에 용사의 흉상을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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