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순국.호국인물

6.25전쟁 호국영웅 고태문 대위

똥맹돌이 2017. 12. 2. 19:00
 

6·25전쟁 호국영웅 고태문 대위

 







고태문 대위는 1929년 1월 3일 북제주군 구좌읍 한동리에서 고상봉씨의 3남으로 태어나 1943년 3월 사립중앙심상소학교(현재 구좌중앙초등학교)를 거쳐 일본 오사카 제총공업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는 1950년 3월 31일 예비역 소위로 임관하였고, 한국전쟁이 발발 직후인 1950년 10월22일 현역소위로 전환하였다. 그 후 1951년 8월24일에는 보병 제11사단 9연대 7중대 1소대장이었다.고소위는 강원도 인제 펀치볼 동부에 위치한 884고지 탈환전투에 참가하여 8월24일 04시 7중대의 선공 소대장으로서 중앙 제1선에서 소대를 지휘하여 용감히 돌진해 나갔다. 그러나 증강된 대대 규모의 적은 모든 화력을 집중하여 저항함으로써 일진일퇴의 격전이 반복되어 사상자만 속출하였다. 고태문 대위는 ‘우리는 선공소대다. 전 소대원들은 조금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부터 나를 따르라!’하면서 소대의 선두에서 포복으로 적진을 향해 나가니 소대원들도 주저없이 용감한 소대장의 뒤를 따라 나갔다. 적의 직사화기가 불을 뿜는 가운데 적진으로 접근한 1소대는 ‘돌격 앞으로!’라는 고태문 대위의 명령과 함께 처절한 백병전을 전개하였다. 이때 제7중대 전 병력이 돌격을 감행하여 고소위가 이끄는 선공소대와 함께 목표인 884고지를 탈환하는데 성공했다. 이로써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전선을 보다 북쪽으로 밀어 부쳐서 전황을유리하게 전개시키는 결정적 전과를 올렸다.

고소위는 1951년 9월1일 중위로 진급하여 제5사단으로 전출하였다. 그 후 제27연대 제9중대장으로 보직되어 강원도 고성군에 위치한 351고지를 방어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고태문 대위는 1952년 11월10일 적 2개 중대의 공격해오자 고중대장은 선두에 서서 격퇴하였다. 그 다음에도 강력한 적이 다시 몰려오자 백병전이 벌어졌고 중과부적으로 진지 일부를 돌파 당하였다. 이에 전 중대원이 필사적으로 돌파구를 봉쇄하기 위해 악전고투하였으나 이 와중에 중대장인 고중위가 적탄에 머리를 맞고 ‘진지를 고수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이날 결국 351고지는 적에게 피탈되었고 다음날 부하대원들이 반격작전을 전개하여 고지를 재탈환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에게 884고지 전투에서 세운 공로로 1952년 1월25일 화랑무공훈장과 1952년 10월21일 충무무공훈장을 수여하였다. 더불어 351고지 전투에서의 그의 희생정신과 위훈을 추모하기 위하여 1952년 11월20일 대위로 추서하였고 1952년 12월31일에는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했다.

전쟁기념사업회에서는 1995년 4월에 100인의 호국인물 중에 한 분으로 고태문 대위를 선정하였고 1999년 11월에는 ‘이달의 호국인물’로 발표하고 현양행사를 거행하였다. 용사는 제주시 충혼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그 후 2001년 6월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에서는 한동리 1168번지 한동초등학교 교정에 용사의 흉상을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