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녀 김만덕의 묘
김만덕은 1739년(영조15년) 김응열의 3남매 중 외동딸로 태어났으나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제주성 내의 한 기녀에게 입양되었는데 그로 인해 본의 아니게 기적에 올라 기생이 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그는 기역에 종사하면서도 부귀와 권력을 물리치고 부덕을 지켜 정절을 생명과 같이 소중히 하였다. 그러나 본시 양가의 딸이었으므로 23세 때 부당하게 기적에 오르게 된 사연을 들어 관에 여러차례 호소하니 관가에서는 그를 기적에서 삭제시키고 양가의 신분으로 복귀시켜 주었다. 양녀로 돌아온 그는 독신으로 농, 축산과 장사를 하여 50대에 이르러서는 내륙지방의 부호들과 견줄만큼 대부호가 되었다.
1790년부터 4-5년동안 제주 역사상 볼 수 없었던 큰 흉년이 들어 온 도민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아사자가 속출하였다. 조정에서는 구호양곡을 운송하였으나 지리적 조건 등으로 뜻대로 되지 않고 그 참상이 날로 더해만 갔다. 이에 김만덕은 거금을 내놓아 육지에서 양곡을 사들여 관가에 바쳐 이들을 구휼하도록 하였다.
당시 목사 유사모가 이 사실을 정조임금께 아뢰니 임금께서 가상히 여겨 소원을 물으니 궁궐을 우러러 보는 것과 금강산을 구경하는 것임을 아뢰었으므로 임금께서 쾌히 승낙하고 국비로 소원을 이루게 하였으며, 내의원 의녀반수직의 벼슬을 내려 임금을 알현하게 하였다. 한편 영의정 채제공은 만덕의 거룩한 공적을 후세 사람들에게 길이 전하고저 그의 행적을 기록한 만덕전을 지었다. 1812년 74세의 나이로 돌아가시니 제주성 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고우니 모루에 안장하였는데 1977년 현재의 위치로 이장하여 그의 근검, 절약, 박애정신을 길이 받들고 있다.
◦ 위치 : 제주시 건입동 모충사 경내(사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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