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자료

북한군의 화전양면전술 평화공세 뒤에 대남도발

똥맹돌이 2007. 12. 28. 01:54

 

갈매기도 알고 있다

한 외딴 섬에 아버지와 아들이 살았다. 소년의 친구는 바닷가의 갈매기들이었다. 소년이 “갈매기야!” 하고 부르면 갈매기들은 그에게 다가와 어깨에 내려앉아 노래하고, 손에서 먹이를 먹었다. 그는 갈매기의 깃털을 쓰다듬어 주면서 하루 종일 즐겁게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갈매기와 노는 모습을 본 그의 아버지가 갈매기를 한 마리 잡아오라고 했다. 다음날, 소년은 갈매기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 후, 갈매기 한 마리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버지와 갈매기로 만든 저녁식사를 맛있게 먹었다.

다음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소년은 바닷가로 놀러 나갔다. 그런데 갈매기들은 더 이상 소년의 곁에 오지 않았다. 소년이 다가가면 갈수록 더 멀리 날아가 버렸다. 소년은 그들에게 더 이상 친구가 아니었다. 갈매기들이 겉으로 웃으며 다가온 소년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1. 난중잡록의 증언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3년 6월 29일, 2차 진주성 전투가 벌어졌다. 전투를 지휘하던 의병장 김천일은 3000여 명의 병력으로 9만2000명의 왜군을 상대하다가 자결했고, 진주성은 왜적에 의해 함락되었다. 그 당시의 일을 기록한 의병장 조경남의 ‘난중잡록(亂中雜錄, 임진왜란 때의 잡록)’은 이렇게 전하고 있다.

왜적이 백성들을 매일 죽여도 다 죽이지 못하자 ‘사창(큰 창고)에 들어가면 죽음을 면한다’고 속이며 협박했다. 강압을 느낀 백성들이 창고에 들어가자 왜적들이 문을 막고 불을 질러 백성들이 모두 집단 화형을 당했다. 이와 같이 적의 속임수를 파악하지 못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를 사지(死地)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 공산주의자들의 화전양면전술

공산주의자들은 혁명 조건이 불리할 때는 거짓 평화를 외치며, 상대방과 협상을 제의하고, 유리할 때는 무력으로 상대방을 전복시킨다. 이러한 공산화 전략을 ‘화전양면전술’이라고 한다. 상대를 기만하고, 무력도발을 하기 위한 계산된 술책인 것이다. 북한은 분단 이후 적화통일을 달성하고자 오늘까지 화전 양면 전술을 적극 구사해 오고 있다.

광복 직후, 남북 총선거를 통한 평화통일을 희망한다고 선전하면서 한편으로는 북한군의 전력 증강과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해 왔다. 1950년 6월 19일, 남북 단일 국회를 개최하고 민족지도자 조만식 선생과 남로당 지하 조직책이던 간첩 이주하·김삼룡의 교환을 제의하는 위장 평화공세를 전개한 후 그해 6월 25일, 6·25 남침전쟁을 도발했다.

우리가 잘 아는 전래동화 ‘해님, 달님’ 에는 간악한 호랑이가 나온다. 떡장수 아주머니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호랑이를 만났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아주머니는 무서워서 얼른 호랑이에게 떡을 하나 주었다. 그리고 바삐 길을 서둘렀으나 잠시 후, 다시 호랑이가 나타났다.

몇 차례 반복 끝에 아주머니가 갖고 있던 떡이 다 떨어지자 결국 호랑이는 아주머니를 잡아먹었다는 이야기다.호랑이의 말 속에 감춰진 이면을 몰랐기에 아주머니는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 역시 북한의 화전양면전술에 현혹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안보 착시현상을 경계해야 한다

오른쪽 위의 그림을 자세히 보라. 하얀 점들이 검은 점으로 보인다. 아래 그림의 가운데 빗금 친 부분을 자세히 보면 그 부분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이 두 그림은 가만히 있는데도 다른 색으로, 혹은 움직이게 보이는데 이것이 바로 착시현상이다.지금까지 북한군은 우리 국민의 평화통일 염원에 편승하여 위장평화 공세를 계속해오면서 대남도발을 자행해 왔다.

‘조선노동당 규약’에 의하면 인민민주주의 해방의 궁극적 목표는 바로 ‘적화통일’로 ‘한반도를 공산화’하는 것이다. 이렇듯 북한은 변하지 않고 있는데도 그들이 변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면 국가와 국민을 큰 위기로 몰아갈 수 있는 ‘안보 착시 현상’을 가져올 수 있다.

1. 왜 땅굴을 팠을까?

지난 4월 10일, 육군 6사단은 제2땅굴 발견 32주년 기념행사를 거행했다. 장병들은 땅굴 수색작전 중 순직한 선배 전우들과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확고한 최전방 경계태세를 계승할 것을 다짐했다. 제2땅굴은 6사단 소속 초병이 땅 밑에서 이상한 폭발음을 감지하고, 1년 5개월여의 탐지 활동 끝에 1975년 3월 19일에 발견했다.

높이 2m, 폭 2.1m의 땅굴로 북한이 유사시 한 시간당 야포 등 중장비를 포함한 1만6000명의 완전 무장 병력을 침투시킬 수 있는 대규모 남침공격용 땅굴이다. 1971년 9월, 김일성은 ‘9·25전투명령’ 교시를 통해 ‘1개의 땅굴은 10개의 핵폭탄보다 효과적’이며 ‘요새화한 현 전선을 극복하는 최적의 수단’이라고 독려하여 1972년 5월부터 땅굴을 파기 시작했다.

1972년 7·4 남북 공동성명이 남북합의로 발표되던 날에도 평화를 외치며 땅굴을 팠던 것이다. 지금까지 기습 남침을 위한 북한의 땅굴은 총 4개가 발견되었다. 그 이후에도 북한은 1983년 10월 8일, 3자회담을 제의하고 다음날 우리 대통령·각료 등이 참배 중인 미얀마 아웅산 묘소를 폭발시켰다. 1987년 11월 11일은 우리나라 각계각층에 ‘민족단합 5개 항’을 골자로 하는 편지를 발송한 후, KAL 858기 폭발사건을 일으켰다.

또한 1998년 남북한 화해·협력 차원에서 소 떼와 비료·옥수수 등 3억 달러 상당을 지원했음에도 6·7월 동해안 속초·묵호 지역의 잠수정·무장간첩을 침투시켰다. 1999년 6월 21일, 남북 차관급 회담 일주일 전에는 연평해전을, 2002 한일 월드컵 3~4위전이 열리던 6월 29일에는 서해교전을 일으키는 등 북한의 평화 공세 뒤에는 항상 대남 도발이 뒤따랐다.

남북한 간에 인적·물적 교류가 아무리 활발해진다 해도 북한 공산정권이 대남적화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 한 군사적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언제든지 상존하고 있다.

2. 이제는 사이버도 뚫는다

북한은 1997년 1월 ‘조선통신’ 사이트를 해외에 개설하면서 ‘사이버 세계’에 등장한 지 올해로 10년째를 맞았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2월 3일자에서 김정일은 ‘컴맹·흡연가·음치’를 21세기의 ‘3대 바보’로 꼽는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북한은 2000년 국내용 광섬유 케이블 망 ‘광명’을 구축해 전국적인 인트라넷을 열었지만, 외부 세계와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월드와이드웹 접근은 고작 수천 명의 고위층 간부들에게만 허용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상황은 북한이 그동안 해킹 부대를 만들어 인터넷상에서 심리전과 사이버테러를 진행해 왔다는 점이다.최근 북한의 해커 부대는 미 국방부의 모의시험 결과 미 태평양사령부의 지휘통제소를 마비시키고 미 본토 전산망에도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북한은 세계 정상급 해킹 전문가를 인민무력부 산하의 김일 군사대학에서 1986년부터 매년 100명씩 배출하고 있다. 이를 통해 미국 국방부와 중앙정보국(CIA), 우리나라 국가 기관 등을 대상으로 각종 심리전과 사이버 테러를 끈질기게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정보기술(IT)이 발전함에 따라 전쟁에서 사이버전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으며, 북한은 이를 대남 심리전과 새로운 형태의 도발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한다

우리 정부의 대북관계 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난 50여 년 동안 북한군은 시시각각 다양한 형태로 대남도발을 자행해 왔다. 따라서 북한군이 대남 적화노선을 포기하고 가시적인 군사 조치를 통해 이를 입증할 때까지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핵심적인 적’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국가 안보는 국가의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에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한반도에 완전한 평화가 정착될 때까지 우리 군은 북한군이 언제 어떤 형태로 도발해 오더라도 완벽히 대응할 수 있는 확고한 군사대비태세를 갖춰야 할 것이다.

'강연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더 큰 대한민국을 향해  (0) 2010.06.19
우리가 열어가야 할 조국의 미래상  (0) 2007.12.30
적으로서의 판단기준  (0) 2007.12.28
북한의 대남정책 목표의 변화  (0) 2007.12.11
남북한 통일시나리오  (0) 2007.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