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전설.신화

天險과 三災

똥맹돌이 2006. 5. 3. 10:05
 

天險과 三災

제주도는 남한 제일의 고봉인 한라산을 중앙에 두고 산남산북으로 구분돼 있어, 강우량과 기온면에서는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고온다습한 온대성 기후에 속한다. 그러면서도 유별난 것은 여름철로 접어들면 북태평양에서 발생하여 초속 17미터 이상으로 이동하는 열대성 저기압인 태풍의 통로라는 점이다. 이 태풍은 폭우를 동반하여 연례행사처럼 괴롭혔다. 〈耽羅錄〉에 맨처음 기재된 것을 발췌해 보면, 태종8년(1408)8월 甲午 12일에 「제주에 큰 비가 내려 물이 제주성에 들어와 관사·민가·화곡 태반이 표몰되거나 침수되었다」하였고, 같은 10월 庚寅(16일)에는 「···제주의 飢民을 진휼하라 명하였다. 濟州 都安撫使가 아뢰기를, 금년에 고을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소와 말을 잡아 양식으로 하는 자가 매우 많습니다···」라고 한 것은 태풍과 폭우의 재화가 컸음을 뜻한다.

또 이에 맞서는 가뭄의 재해도 심했다. 〈耽羅紀年〉의 肅宗40년(1714)에 보면, 2월부터 7월까지 가물었고 8월에는 태풍까지 있었는데, 《肅宗實錄》에도 이 사실이 기재된 바, 이때 큰 기근으로 백성은 우마를 도살하여 연명했고, 우마도 목말라 죽었다고 했으니, 旱炎의 피해도 적지 않았다.

이와같이 생계의 천적이었던 天險의 三災인 바람·홍수·가뭄은 생업에 결정타를 가함으로써 극심한 기근을 초래시켰다. 그럴때마다 조정에서 베푸는 救恤에 희망을 걸 수 밖에 없었다. 광해군때(1608)부터 舊韓末(1910)까지의 문헌기록에 나타난 흉년의 횟수만도 70여 회에 달했다고 하니, 4년에 한번꼴로 흉년을 당한 것이된다.

여기서 빼놓을수 없는 것은 正祖19년(1795)8월에 큰 비바람과 해수로 백곡이 절종되어 굶어 죽는 자가 많았는데, 敎坊생활로 어렵게 모은 사재를 털고 육지부에서 곡식을 사들여 와서 구제활동에 헌신한 金萬德의 救恤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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